
지난 2022년 4월 22일자에 필자는 6.25전쟁 당시 군산지역 학도병들의 집결지의 현장 이었던 '군산중앙초등학교'를 찾아 나섰다. 1950년 6월 25일에 북괴군의 전면남침이 시작되면서 우리 국군과 미군은 지연작전을 전개해 1950년 7월에는 금강 방어선을 형성함으로 북괴군의 침략을 저지하게 된다. 이 무렵 군산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중학생(6년제 중학교)들이 북괴군의 전면남침 소식을 전해듣고는 백척간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학도의용군'에 자원하고자 1950년 7월 13일에 군산중학교, 군산상업학교, 군산사범학교, 군산영명학교, 군산북중학교, 옥구중학교 등 총 6개의 학교에 재학중 이었던 1,000여명의 학도병들이 '군산중앙초등학교 교지'로 모두 집결하였다. 이들은 군산중앙초등학교로 집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모에 흰머리띠를 두르고는 "역적의 공산당을 때려 부숴라 역적의 김일성을 때려 죽여라" 라고 목놓아 외쳤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그 당시 학도병으로서 군산중앙초등학교로 집결 했었던 '남정근 6.25참전용사님'께선 아래와 같이 증언하였다.
"1950년 7월 14일 10시 입대 장소인 '군산중앙국민학교'에 집합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무덤덤했다. 줄지어 서라는 기간병의 말에 따랐다. 얼굴색이 검은 대위가 연단에 올라 첫 마디는 "지금부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권총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라는 대로 해라." 그 말끝에 권총은 세발의 총성을 하늘로 울렸다. 이것이 명령 이었다. 그 후 집합자 전원은 군산역으로 가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후 군산출신 학도병들은 대구로 이동하여 단기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안강•기계 전투'에 참전해 북괴군의 침략에 맞서 용감히 싸웠다. 훗날 군산중앙초등학교의 교지는 1952년 6월 10일에 박기성 대령님이 지휘했던 '제1신병보충대'의 막사로도 사용되어 이곳에서 징집자들을 수용해 각 제1훈련소(제주도), 제2훈련소(논산)에 전속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제1신병보충대 전투상보'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부대는 4285. 6. 10. 08:00부로 대본부 병사(兵舍)를 군산중앙국민학교로 이동하려 함. 대본부중대장 육군중위 손석현(孫錫賢)은 각 과를 지휘하여 현 위치로부터 군산중앙국민학교(본관)로 4285. 6. 10. 15:00까지 이동 완료하라. 의무대장 육군소위 민선식(閔善植)은 의무대와 통신대를 지휘하여 현 위치로부터 군산중앙국민학교(본관)로 4285. 6. 10. 15:00까지 이동 완료하라.'
- 단기 4285(서기 1952). 6. 9, 제1신병보충대 전투상보 내용 中 -
이렇듯 6.25전쟁기간 동안 군산중앙초등학교의 교지는 국가수호에 나섰던 군산 학도의용군과 국군 모집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 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필자는 현장을 답사 하면서 70여년 전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분주하게 집결하는 군산 학도병들의 모습과 소집영장을 받고서 집결하는 장정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마음 한켠이 숙연해지며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끝.

참고문헌(사이트): 6.25전쟁 학도의용군 연구 자료집, 6.25전쟁 학도병 참전기(전민일보), 제1신병보충대 전투상보, 디지털군산문화대전(6.25전쟁과 군산 지역의 학도병)
지난 2022년 4월 22일자에 필자는 6.25전쟁 당시 군산지역 학도병들의 집결지의 현장 이었던 '군산중앙초등학교'를 찾아 나섰다. 1950년 6월 25일에 북괴군의 전면남침이 시작되면서 우리 국군과 미군은 지연작전을 전개해 1950년 7월에는 금강 방어선을 형성함으로 북괴군의 침략을 저지하게 된다. 이 무렵 군산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중학생(6년제 중학교)들이 북괴군의 전면남침 소식을 전해듣고는 백척간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학도의용군'에 자원하고자 1950년 7월 13일에 군산중학교, 군산상업학교, 군산사범학교, 군산영명학교, 군산북중학교, 옥구중학교 등 총 6개의 학교에 재학중 이었던 1,000여명의 학도병들이 '군산중앙초등학교 교지'로 모두 집결하였다. 이들은 군산중앙초등학교로 집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모에 흰머리띠를 두르고는 "역적의 공산당을 때려 부숴라 역적의 김일성을 때려 죽여라" 라고 목놓아 외쳤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그 당시 학도병으로서 군산중앙초등학교로 집결 했었던 '남정근 6.25참전용사님'께선 아래와 같이 증언하였다.
"1950년 7월 14일 10시 입대 장소인 '군산중앙국민학교'에 집합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무덤덤했다. 줄지어 서라는 기간병의 말에 따랐다. 얼굴색이 검은 대위가 연단에 올라 첫 마디는 "지금부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권총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라는 대로 해라." 그 말끝에 권총은 세발의 총성을 하늘로 울렸다. 이것이 명령 이었다. 그 후 집합자 전원은 군산역으로 가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후 군산출신 학도병들은 대구로 이동하여 단기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안강•기계 전투'에 참전해 북괴군의 침략에 맞서 용감히 싸웠다. 훗날 군산중앙초등학교의 교지는 1952년 6월 10일에 박기성 대령님이 지휘했던 '제1신병보충대'의 막사로도 사용되어 이곳에서 징집자들을 수용해 각 제1훈련소(제주도), 제2훈련소(논산)에 전속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제1신병보충대 전투상보'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부대는 4285. 6. 10. 08:00부로 대본부 병사(兵舍)를 군산중앙국민학교로 이동하려 함. 대본부중대장 육군중위 손석현(孫錫賢)은 각 과를 지휘하여 현 위치로부터 군산중앙국민학교(본관)로 4285. 6. 10. 15:00까지 이동 완료하라. 의무대장 육군소위 민선식(閔善植)은 의무대와 통신대를 지휘하여 현 위치로부터 군산중앙국민학교(본관)로 4285. 6. 10. 15:00까지 이동 완료하라.'
- 단기 4285(서기 1952). 6. 9, 제1신병보충대 전투상보 내용 中 -
이렇듯 6.25전쟁기간 동안 군산중앙초등학교의 교지는 국가수호에 나섰던 군산 학도의용군과 국군 모집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 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필자는 현장을 답사 하면서 70여년 전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분주하게 집결하는 군산 학도병들의 모습과 소집영장을 받고서 집결하는 장정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마음 한켠이 숙연해지며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끝.
참고문헌(사이트): 6.25전쟁 학도의용군 연구 자료집, 6.25전쟁 학도병 참전기(전민일보), 제1신병보충대 전투상보, 디지털군산문화대전(6.25전쟁과 군산 지역의 학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