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1년 1월 4일자 답사 내용이며, 경기도 평택시 중앙로에 있는 성동초등학교내에 위치한 '육군 1군단 창설지'를 찾아나섰다. 6.25전쟁 개전초기였던 1950년 6월 28일에 우리 국군은 북괴군을 막기 위해 서울 이남에서 '한강 방어선 전투'를 치루게 된다. 이 무렵 한강 방어선의 총 지휘를 맡은 김홍일 장군님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창설하시는데, 이 부대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육군 1군단'의 전신 이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한강 방어선이 뚫리면서 1950년 7월 5일에 경기도 평택으로 철수를 하였는데, 이때 육군 참모총장 이었던 정일권 장군님이 부대개편을 시행함으로서 구두로 '1군단'을 창설 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성동초등학교 교지에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근간으로 '국본(國本) 일반명령 제2호'에 의거해 '육군1군단'을 창설 하였으며, 초대 군단장엔 김홍일 장군님이 되었다. 1군단은 최초 창설 되었을 당시 수도사단(1연대, 8연대, 18연대), 1사단(11연대, 12연대, 13연대), 2사단(5연대, 16연대, 20연대)을 예하부대로 편성하였으며, '군단 지휘부 참모'는 아래와 같이 구성되었다.
1군단장: 김홍일 소장님
1군단 참모장: 유재흥 준장님
1군단 인사참모: 김응수 대령님
1군단 정보참모: 이종국 대령님
1군단 작전참모: 김종갑 대령님
1군단 군수참모: 이창일 중령님
1군단의 창설은 우리 국군에 있어 최초 군단급 부대가 정식으로 창설된 것으로서 이는 우리 국군의 체계적인 부대지휘와 원활한 한미연합작전을 전개하여 전선조정을 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창설직후에도 병력과 지원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는 상황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하부대의 재편성을 완료한 뒤 육군본부를 통해 '작전명령 제23호'를 수령함으로서 군단지휘소는 평택에서 청주로 이동해 그곳에서 지휘소를 다시 개소하였으며, 북괴군들의 진격을 저지하면서 미군 24사단과 함께 전선조정을 완료하여 지연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에서도 전선조정과 같이 부대 재편성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북괴군의 공격을 방어하는데에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인천상륙작전 이후엔 북진을 거듭하여 1950년 10월 1일에 국군 1군단 예하 3사단이 38선을 첫 돌파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북진기간 동안 1군단은 동부전선의 해안선을 따라 원산, 흥남, 청진까지 진출하여 점령 했다가 중공군의 기습적인 개입으로 미군 10군단과 흥남으로 철수하여 부산으로 해상철수를 하게 된다. 이후 육군 1군단은 동해안에서 군단작전을 수행 하였으며, 강원도 주문진에 사령부를 두고 '884고지 전투', '351고지 전투', '설악산 전투', '향로봉 전투' 등등에 참전해 북괴군과 중공군을 몰아내는데 큰 활약을 였다. 6.25전쟁기에만 1군단장의 임무를 수행하신 장군님들은 총 4대에 이르며, 아래의 내용은 6.25전쟁기에 재직하셨던 1~4대 1군단장 현황이다.
- 6.25전쟁 기간중에 재직했던 역대 1군단장 현황 -
초대: 김홍일 중장 1950. 7. 5 ~ 1950. 9. 1
2 대: 김백일 중장 1950. 9. 1 ~ 1951. 3. 29
3 대: 백선엽 대장 1951. 3. 29 ~ 1951 12. 2
4 대: 이형근 대장 1951. 12. 2 ~ 1954. 2. 2
1군단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여러차례 재편성을 거치면서 현재 '광개토 부대'라는 명칭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주둔하고 있으며, '지상작전사령부' 예하부대로 대한민국의 서부전선을 수호하고 있다. 끝.
참고문헌: 한국전쟁사료, 한국군 전력증강사1(1945-1960), 통계로 본 6.25전쟁, 6.25전쟁사 제3권
지난 2021년 1월 4일자 답사 내용이며, 경기도 평택시 중앙로에 있는 성동초등학교내에 위치한 '육군 1군단 창설지'를 찾아나섰다. 6.25전쟁 개전초기였던 1950년 6월 28일에 우리 국군은 북괴군을 막기 위해 서울 이남에서 '한강 방어선 전투'를 치루게 된다. 이 무렵 한강 방어선의 총 지휘를 맡은 김홍일 장군님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창설하시는데, 이 부대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육군 1군단'의 전신 이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한강 방어선이 뚫리면서 1950년 7월 5일에 경기도 평택으로 철수를 하였는데, 이때 육군 참모총장 이었던 정일권 장군님이 부대개편을 시행함으로서 구두로 '1군단'을 창설 하라는 명령을 하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성동초등학교 교지에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근간으로 '국본(國本) 일반명령 제2호'에 의거해 '육군1군단'을 창설 하였으며, 초대 군단장엔 김홍일 장군님이 되었다. 1군단은 최초 창설 되었을 당시 수도사단(1연대, 8연대, 18연대), 1사단(11연대, 12연대, 13연대), 2사단(5연대, 16연대, 20연대)을 예하부대로 편성하였으며, '군단 지휘부 참모'는 아래와 같이 구성되었다.
1군단장: 김홍일 소장님
1군단 참모장: 유재흥 준장님
1군단 인사참모: 김응수 대령님
1군단 정보참모: 이종국 대령님
1군단 작전참모: 김종갑 대령님
1군단 군수참모: 이창일 중령님
1군단의 창설은 우리 국군에 있어 최초 군단급 부대가 정식으로 창설된 것으로서 이는 우리 국군의 체계적인 부대지휘와 원활한 한미연합작전을 전개하여 전선조정을 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창설직후에도 병력과 지원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는 상황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하부대의 재편성을 완료한 뒤 육군본부를 통해 '작전명령 제23호'를 수령함으로서 군단지휘소는 평택에서 청주로 이동해 그곳에서 지휘소를 다시 개소하였으며, 북괴군들의 진격을 저지하면서 미군 24사단과 함께 전선조정을 완료하여 지연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에서도 전선조정과 같이 부대 재편성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북괴군의 공격을 방어하는데에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인천상륙작전 이후엔 북진을 거듭하여 1950년 10월 1일에 국군 1군단 예하 3사단이 38선을 첫 돌파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북진기간 동안 1군단은 동부전선의 해안선을 따라 원산, 흥남, 청진까지 진출하여 점령 했다가 중공군의 기습적인 개입으로 미군 10군단과 흥남으로 철수하여 부산으로 해상철수를 하게 된다. 이후 육군 1군단은 동해안에서 군단작전을 수행 하였으며, 강원도 주문진에 사령부를 두고 '884고지 전투', '351고지 전투', '설악산 전투', '향로봉 전투' 등등에 참전해 북괴군과 중공군을 몰아내는데 큰 활약을 였다. 6.25전쟁기에만 1군단장의 임무를 수행하신 장군님들은 총 4대에 이르며, 아래의 내용은 6.25전쟁기에 재직하셨던 1~4대 1군단장 현황이다.
- 6.25전쟁 기간중에 재직했던 역대 1군단장 현황 -
초대: 김홍일 중장 1950. 7. 5 ~ 1950. 9. 1
2 대: 김백일 중장 1950. 9. 1 ~ 1951. 3. 29
3 대: 백선엽 대장 1951. 3. 29 ~ 1951 12. 2
4 대: 이형근 대장 1951. 12. 2 ~ 1954. 2. 2
1군단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여러차례 재편성을 거치면서 현재 '광개토 부대'라는 명칭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주둔하고 있으며, '지상작전사령부' 예하부대로 대한민국의 서부전선을 수호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