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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2024년 3월 11일 '6.25전쟁 관련 전적비' 답사(해병대 진동리지구 전첩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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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hs****2026-02-03 00:55
덕분에 유익한글을 보네요.
아쉬운점이 있지만 지역민이 직접 바라다 본 한국전쟁 진동리전투(진전면.진북면.진동면 전투)가 1950년 8월1일부터
다음달 9월21일 새벽전투까지 인데 .... (아래내용은 군사편찬연구소에 수정을 줄기차게 하는중~)
○ 박진전투 : 부림면.지정면.이방면.유어면.구지면 ○ 다부동전투 : 해평면. 단밀면. 상주 수암산.가산면.동명면
(!)발산고개전투 : 한국해병 창원군 진전면 봉암리 발산고개전투가 진동리전투 첫 시초로 1950년 8월1일(음력6월18)
이른아침 인민군 군수챠량을 뚜드려 잡고 개떼같이 달려드는 인민군들과 8월2일 오후까지 싸우다 탄약및
인원에 밀려 오후늦게 여항면 평암리로 거처 부재고개를 너머
서북산 방향으로 퇴각을 하며. 8월3일아침 한국해병 퇴각로 부재골에는 인민군들이 누렇게
산전체에 깔려있고 하늘에는 미군기가 이른아침부터 선회를 하고......
고사리전투(함안군)는 있지도 않으며 발산고개(창원군)전투입니다. 전사자 여섯분
(2) 여우고지 옥녀봉전투 : 한국해병 여우고지 옥녀봉전투에 1950년 8월5일 미군들의 엄호를
받으며 단독으로 여우고지 옥녀봉(진동리전적비 뒷편 진전터널위)
점령하여 전원일계급 특진의 영광을 받고 미종군여기자로 부터
"귀신도 잡을 만큼 용감했다"는 찬사를 듣고......차후 통영전투에 투입이 되어
귀신도 잡을 만큼 용감했다는 것을 증명한 전투임.
(3) 창원군 진동면 태봉리 340고지 전투 : 1950년 8월 12-3일 여우고지 옥녀봉에서
인민군의 군수물자가 완전 차단이 된 상태에서 태봉리 340에서 미군에게 발각이
되어 미군탱크 5대가 소총만 소지한 340고지의 인민군을 지금의 태봉병원 자리에서
무차별 두드리고 나서 한국해병 장병들 께서 마무리 청소를 깨끗이 하고....
통영전투 격전지로 진동리전투 격전지를 벗어남.
이게 한국해병 진동리전투의 이력으로 1950년 8월 1일 발산고개 전투의 이틀동안
전투가 나라를 구한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행한 2008년판 진동리전투 내용은 신뢰성에 문제가 많으며
전투의 생명은 전투지명과 전투날짜입니다.
백선엽장군 책자속에 미군이 일본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고 전투를 하는게 제일 부러웠다고
기술을 하는것을 보면 봉암리를 고사리라고 서술하는것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한국해병 진동리전투 동영상을 첨부할려고 해도 붙이기가 되지 않아 아쉽네요
아래그림이 진주-고성 삼거리를 틀어맞고 있는 진전터널위 여우고지 옥녀봉인데
342야반산으로 표현하니 진동리전투 현황이 개판으로 해병대전적비 설명간판에도
아무의미가 없는 장소 한국해병이 옥녀봉이 아닌 야반산에
인민군도 없는 곳에 올라갔다고 나옵니다.
절대방어구역 여우고지 옥녀봉의 특징
1. 진주-고성 삼거리를 틀어맞다
2. 8월5일 한국해병 단독으로 인민군을 몰아내 전원 일계급 특진
3. 8월7일 한미합동으로 옥녀봉을 오르기 위해 혈투가 벌어짐
4. 8월8일 한국전쟁 미군참전 첫야간 전투로 옥녀봉을 뺏어 진동리전투가 끝날때까지
9월21일 새벽전투까지 방어
5. 옥녀봉격전지 미군참호가 도로공사.철탑공사5개 유실분.재선충 가파외 눈으로 확인 점검수가 873개로
엄호용 참호.공격용 참호.방어용 참호가 구별되는 유일의 격전지 (점검일자:2025.11.11-12.30)
반대편 인민군 참호는 4~500개 추정 (올해 낙엽이 다 떨어진 11월부터 점검예정)
6. 한국전쟁 단일마을 행정구역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근곡리내 인민군 사체 2'000구이상 매장
(일인 최다 304구 매장/김한목씨)....다른지역에서 단일마을 이런 예가 없을걸로 암
미군은 옥녀봉 격전지 관련 7장의 사진을 남김
'













아쉬운점이 있지만 지역민이 직접 바라다 본 한국전쟁 진동리전투(진전면.진북면.진동면 전투)가 1950년 8월1일부터
다음달 9월21일 새벽전투까지 인데 .... (아래내용은 군사편찬연구소에 수정을 줄기차게 하는중~)
○ 박진전투 : 부림면.지정면.이방면.유어면.구지면 ○ 다부동전투 : 해평면. 단밀면. 상주 수암산.가산면.동명면
(!)발산고개전투 : 한국해병 창원군 진전면 봉암리 발산고개전투가 진동리전투 첫 시초로 1950년 8월1일(음력6월18)
이른아침 인민군 군수챠량을 뚜드려 잡고 개떼같이 달려드는 인민군들과 8월2일 오후까지 싸우다 탄약및
인원에 밀려 오후늦게 여항면 평암리로 거처 부재고개를 너머
서북산 방향으로 퇴각을 하며. 8월3일아침 한국해병 퇴각로 부재골에는 인민군들이 누렇게
산전체에 깔려있고 하늘에는 미군기가 이른아침부터 선회를 하고......
고사리전투(함안군)는 있지도 않으며 발산고개(창원군)전투입니다. 전사자 여섯분
(2) 여우고지 옥녀봉전투 : 한국해병 여우고지 옥녀봉전투에 1950년 8월5일 미군들의 엄호를
받으며 단독으로 여우고지 옥녀봉(진동리전적비 뒷편 진전터널위)
점령하여 전원일계급 특진의 영광을 받고 미종군여기자로 부터
"귀신도 잡을 만큼 용감했다"는 찬사를 듣고......차후 통영전투에 투입이 되어
귀신도 잡을 만큼 용감했다는 것을 증명한 전투임.
(3) 창원군 진동면 태봉리 340고지 전투 : 1950년 8월 12-3일 여우고지 옥녀봉에서
인민군의 군수물자가 완전 차단이 된 상태에서 태봉리 340에서 미군에게 발각이
되어 미군탱크 5대가 소총만 소지한 340고지의 인민군을 지금의 태봉병원 자리에서
무차별 두드리고 나서 한국해병 장병들 께서 마무리 청소를 깨끗이 하고....
통영전투 격전지로 진동리전투 격전지를 벗어남.
이게 한국해병 진동리전투의 이력으로 1950년 8월 1일 발산고개 전투의 이틀동안
전투가 나라를 구한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행한 2008년판 진동리전투 내용은 신뢰성에 문제가 많으며
전투의 생명은 전투지명과 전투날짜입니다.
백선엽장군 책자속에 미군이 일본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고 전투를 하는게 제일 부러웠다고
기술을 하는것을 보면 봉암리를 고사리라고 서술하는것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한국해병 진동리전투 동영상을 첨부할려고 해도 붙이기가 되지 않아 아쉽네요
아래그림이 진주-고성 삼거리를 틀어맞고 있는 진전터널위 여우고지 옥녀봉인데
342야반산으로 표현하니 진동리전투 현황이 개판으로 해병대전적비 설명간판에도
아무의미가 없는 장소 한국해병이 옥녀봉이 아닌 야반산에
인민군도 없는 곳에 올라갔다고 나옵니다.
절대방어구역 여우고지 옥녀봉의 특징
1. 진주-고성 삼거리를 틀어맞다
2. 8월5일 한국해병 단독으로 인민군을 몰아내 전원 일계급 특진
3. 8월7일 한미합동으로 옥녀봉을 오르기 위해 혈투가 벌어짐
4. 8월8일 한국전쟁 미군참전 첫야간 전투로 옥녀봉을 뺏어 진동리전투가 끝날때까지
9월21일 새벽전투까지 방어
5. 옥녀봉격전지 미군참호가 도로공사.철탑공사5개 유실분.재선충 가파외 눈으로 확인 점검수가 873개로
엄호용 참호.공격용 참호.방어용 참호가 구별되는 유일의 격전지 (점검일자:2025.11.11-12.30)
반대편 인민군 참호는 4~500개 추정 (올해 낙엽이 다 떨어진 11월부터 점검예정)
6. 한국전쟁 단일마을 행정구역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근곡리내 인민군 사체 2'000구이상 매장
(일인 최다 304구 매장/김한목씨)....다른지역에서 단일마을 이런 예가 없을걸로 암
미군은 옥녀봉 격전지 관련 7장의 사진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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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3월 11일 답사 내용이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지산리에 소재한 '해병대 진동리지구 전첩비'를 찾아 나섰다. '해병대 진동리지구 전첩비'는 1950년 8월 6일 ~ 12일에 이르기까지 진동리지구에서 김성은부대(해병대)가 북괴군 6사단의 진격을 저지에 성공함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2년에 해병대 사령부에 의해 세워진 전첩비 이다. 김성은부대는 미 24사단 19연대에 배속되어 진주지구에서 전투를 전개하던 중, 1950년 7월 31일에 철수명령에 따라 경남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후 마산으로 진격하는 북괴군을 진동리 서쪽에서 섬멸하라는 이응준 서남지구전투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1950년 8월 2일에는 진전면(현 마산합포구)으로 이동하여 진전면 고사리에서 북괴군 6사단 예하 정찰대대 병력에 대해 기습공격을 가하여 이들을 격퇴한 뒤 8월 5일에는 진동리로 이동, 미 25사단 예하 27연대에 배속되어 진동지서(현 파출소)에 대대본부를 설치 후 예하 7중대를 예비대로 두고 나머지 중대는 방어구역에 배치하였다. 한편 북괴군 6사단은 마산의 주요 고지인 서북산을 점령한데 이어 진동리와 마산을 잇는 거점의 340고지를 점령 후 마산-진동리간의 도로에서 왕래하는 아방(我方)의 부대들을 기습 하였다.
이에 김성은부대는 마산-진동리간의 보급로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하달 받아 예비대로 있던 7중대를 340고지에 투입함으로서 1950년 8월 6일 13시경에 수류탄전을 전개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전개해 2명의 전사자와 5명의 부상자를 내고 340고지를 점령 하였다. 이 공로로 김성은부대는 김성은 중령님을 비롯한 해병부대원들 모두 일계급 특진을 하는 영광을 갖게 된다. 이 전투가 '제1차 진동리 전투' 였다. 그리고 이어서 1950년 8월 7일에는 미 25사단을 중심으로 증강한 '킨 특수임무부대'가 진주 탈환을 위해 공격작전으로 전환하면서 이때 김성은부대는 진동리지구의 주보급로와 주요 고지들을 확보 및 점령 하는 것이 임무 였다.
김성은부대는 진해통제부를 통해 155명의 병력을 보충받은 뒤 육군 민 부대 그리고 전투경찰부대와 함께 합동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북괴군들은 1950년 8월 10일 새벽 3시에 김성은부대의 진지를 공격 하였으나 해병대는 이들을 격퇴 하였다. 그러나 북괴군들은 또다시 부대를 재정비한 뒤 진동리를 향해 재차 공격해 들어왔으며, 이무렵 김성은부대는 1950년 8월 10일부터 야반산과 209고지(진북면 신촌리 뒷산), 취봉고지, 서북산 등에서 북괴군과의 전투를 전개하게 된다. 아래의 현황은 그 당시 김성은부대 예하 중대별로 하달받은 작전명령 내용이다.
위와 같은 현황에 따라 각 중대들은 진동리를 중심으로 방어작전을 수행하였으며, 2중대의 경우 209고지에서 60명의 북괴군들과 조우하여 현장에서 교전을 전개해 격퇴 후 계속해서 공격을 전개해 435고지를 점령 하였다. 3중대는 야반산을 점령 후 취봉고지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이 고지에서부터 사상자가 속출되기 시작하였으며, 수류탄전을 전개할 만큼 전투가 치열 하였으나 결국 3중대가 필봉고지를 점령함으로서 북괴군들의 진동리 공격은 돈좌 되었다. 7중대는 368고지에 대해 공격을 전개 하였으나 북괴군들의 저항이 워낙 강하여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자 결국 7중대는 잠시 공격을 중단한 뒤 다음 날 11일에 오전 6시에 공격을 재개하여 결국 368고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듯 김성은부대는 진동리지구 일대에서 마산-진동리를 잇는 주보급로를 확보하는 한편 서북산과 연결되는 능선들과 주요 고지들을 점령한 후 미 25사단에게 전선을 인계 하였다. 이 전투가 '제2차 진동리 전투' 였으며, 이 전투에 참전했던 '신영철 해병대원님(해병 2기, 해군 14기)'은 아래와 같은 증언을 하였다.
"나 신영철은 경기관총 사수였다. 그날 진동리로 진격하라는 명령에 따라 무거운 장비를 들고 반나절쯤 걸어서 어느 고지에 올랐다. 앞서 진동리에서 전투할 때 제2중대장 김광식 대위와 이병문 소대장이 "여기에 자리 잡아라"고 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분들은 지리적으로 요충지임을 알고 눈독을 들인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낮에 북괴군들이 마구 내려오면서 그냥 총을 갈겨댔다. 나는 바로 응사하여 많은 적을 쓰러뜨렸지만 어느 사이 나도 모르게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다."
진동리 전투에서 활약한 김성은부대는 이후 미 25사단의 배속이 해제되고 1950년 8월 13일에 대구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아 함안군 군북면에 소재한 중암리로 이동 하였으며, 8월 16일에는 통영 상륙작전을 전개하게 된다. 끝으로 진동리에서 용맹함을 보여줬던 한국 해병대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던 미 해병1사단장 스미스 장군님의 회고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겠다.
"우리가 진동리에서 한국 해병대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신이 지상에 내려온 것 같은 기적을 체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