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이곳 저곳을 업무와 여행으로 다니게 되는데요. 우리가 거의 관심이 없는 이지역의 전쟁사를 알아보는 과정도 재미가 있어 직접 다녀보고 수집한 내용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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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탄자니아의 섬인 잔지바르(Zanzibar)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입니다.(제주도보다 크지요) 유럽인들이 주로 여행을 오지만 최근에는 한국 신혼부부들도 많아 지고 있다고 합니다. 에메랄드빛 해변과 석양으로 대표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과거 동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서양과 중동지역 세력이 충돌했던 지역입니다.
또한 Queen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아래 사진 참조)
짧은 역사를 설명하자면...
잔지바르는 1499년까지 포르투갈 점령하에 있다가 쌩뚱맞게 1698년 이후에는 멀리 떨어진 오만의 영토이자 수도가 된 후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어 영국의 보호령 아래 놓이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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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일어났던 46분간 지속되었던,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는 앵글로-잔지바르 전쟁(Anglo-Zanzibar War)을 소개합니다.
이 전쟁은 1896년 8월 27일 영국과 잔지바르 술탄국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로써 46분 동안 지속되어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1896년 8월 25일 친영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 후 술탄 칼리드 빈 바르가쉬의 즉위였습니다.
당시 양국의 협정에 따라 영국의 보호령인 잔지바르 술탄국의 후계자는 영국 영사의 허락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칼리드 술탄이 즉위하자 영국은 그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궁전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이에 칼리드는 저항을 결심하게 되지요.
■ 경과
8월 27일 09:00에 최후통첩을 한 이후 영국은 순양함 두 척, 구축함 세 척, 해병대와 선원 150명, 그리고 900명의 잔지바르 용병을 잔지바르 항구에 집결시킵니다. 영국 해군은 해리 로우슨 해군 소장의 지휘 하에 있었고, 잔지바르 용병은 로이드 매튜스 준장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사진 1) 영국군 배치도
숱탄의 부대는 대부분 민간인으로 구성된 약 2,800명이었고 술탄의 궁전 경비대와 수백 명의 하인 및 노예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술탄의 부대는 포 몇문과 기관총만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09:02에 영국군의 폭격으로 궁전에 화재가 나고 방어군의 전선이 곧바로 무력화 되었습니다. 소규모 해전을 통해 영국군은 술탄의 왕실 요트인 HHS 글래스고와 두 척의 작은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이후 영국의 잔지바르 용병이 궁전에 접근을 하자 술탄군은 항복하였고 09:46에 포격이 중단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습니다. (총 전쟁시간 46분)
■ 결과
술탄군은 약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반면, 영국군은 부사관 한 명만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술탄 칼리드는 독일 영사관으로 망명을 간 후 독일령 동아프리카(현재 탄자니아 본토 지역)로 탈출했지요. 영국은 빠르게 술탄 하마우드를 정부의 수장으로 임명했고 이후 노예무역이 금지되었습니다.
전쟁 자체는 아주 간단했지만 이후 동아프리카에서 독일과 영국의 힘의 균형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 2) 뒤에 보이는 건물은 “기적의 집”이라는 술탄 궁전의 일부이고 동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공급된 건물입니다. 한가지 의아한 것은 궁전-하렘-기적의 집으로 이루어진 궁전 단지가 전혀 방어를 위한 구조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건물들은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술탄군 사망자 대부분은 화재로 숨졌습니다.
* 술탄의 군대가 왜 46초만에 저항을 포기했는지 알겠죠? (Si vis pacem, Para bellum)

(사진 3) 술탄군의 포입니다. 술탄군은 4문으로 구성된 1개 포대만 있었고 전챙 초기에 완전 전멸되었습니다. (46초간 진행된 전쟁이라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초기인지 잘 판단이 안되네요)

(사진 4) 영국 해군이 배치되었던 해안입니다. 지금은 관광객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지요.

(사진 5)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 이곳 잔지바르에서 인도계인 영국 총독부 공무원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이곳 저곳을 업무와 여행으로 다니게 되는데요. 우리가 거의 관심이 없는 이지역의 전쟁사를 알아보는 과정도 재미가 있어 직접 다녀보고 수집한 내용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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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탄자니아의 섬인 잔지바르(Zanzibar)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입니다.(제주도보다 크지요) 유럽인들이 주로 여행을 오지만 최근에는 한국 신혼부부들도 많아 지고 있다고 합니다. 에메랄드빛 해변과 석양으로 대표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과거 동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서양과 중동지역 세력이 충돌했던 지역입니다.
또한 Queen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아래 사진 참조)
짧은 역사를 설명하자면...
잔지바르는 1499년까지 포르투갈 점령하에 있다가 쌩뚱맞게 1698년 이후에는 멀리 떨어진 오만의 영토이자 수도가 된 후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어 영국의 보호령 아래 놓이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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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일어났던 46분간 지속되었던,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는 앵글로-잔지바르 전쟁(Anglo-Zanzibar War)을 소개합니다.
이 전쟁은 1896년 8월 27일 영국과 잔지바르 술탄국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로써 46분 동안 지속되어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1896년 8월 25일 친영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 후 술탄 칼리드 빈 바르가쉬의 즉위였습니다.
당시 양국의 협정에 따라 영국의 보호령인 잔지바르 술탄국의 후계자는 영국 영사의 허락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칼리드 술탄이 즉위하자 영국은 그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궁전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이에 칼리드는 저항을 결심하게 되지요.
■ 경과
8월 27일 09:00에 최후통첩을 한 이후 영국은 순양함 두 척, 구축함 세 척, 해병대와 선원 150명, 그리고 900명의 잔지바르 용병을 잔지바르 항구에 집결시킵니다. 영국 해군은 해리 로우슨 해군 소장의 지휘 하에 있었고, 잔지바르 용병은 로이드 매튜스 준장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사진 1) 영국군 배치도
숱탄의 부대는 대부분 민간인으로 구성된 약 2,800명이었고 술탄의 궁전 경비대와 수백 명의 하인 및 노예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술탄의 부대는 포 몇문과 기관총만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09:02에 영국군의 폭격으로 궁전에 화재가 나고 방어군의 전선이 곧바로 무력화 되었습니다. 소규모 해전을 통해 영국군은 술탄의 왕실 요트인 HHS 글래스고와 두 척의 작은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이후 영국의 잔지바르 용병이 궁전에 접근을 하자 술탄군은 항복하였고 09:46에 포격이 중단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습니다. (총 전쟁시간 46분)
■ 결과
술탄군은 약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반면, 영국군은 부사관 한 명만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술탄 칼리드는 독일 영사관으로 망명을 간 후 독일령 동아프리카(현재 탄자니아 본토 지역)로 탈출했지요. 영국은 빠르게 술탄 하마우드를 정부의 수장으로 임명했고 이후 노예무역이 금지되었습니다.
전쟁 자체는 아주 간단했지만 이후 동아프리카에서 독일과 영국의 힘의 균형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 2) 뒤에 보이는 건물은 “기적의 집”이라는 술탄 궁전의 일부이고 동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공급된 건물입니다. 한가지 의아한 것은 궁전-하렘-기적의 집으로 이루어진 궁전 단지가 전혀 방어를 위한 구조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건물들은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술탄군 사망자 대부분은 화재로 숨졌습니다.
* 술탄의 군대가 왜 46초만에 저항을 포기했는지 알겠죠? (Si vis pacem, Para bellum)
(사진 3) 술탄군의 포입니다. 술탄군은 4문으로 구성된 1개 포대만 있었고 전챙 초기에 완전 전멸되었습니다. (46초간 진행된 전쟁이라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초기인지 잘 판단이 안되네요)
(사진 4) 영국 해군이 배치되었던 해안입니다. 지금은 관광객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지요.
(사진 5)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 이곳 잔지바르에서 인도계인 영국 총독부 공무원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