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넌 도대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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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소련에 공부하러 간다.”아버지가 동네 이웃에게 하신 말씀이다. 2006년 경상도 시골마을에서는 아직도 ‘러시아’보다는 ‘소련’이 입과 귀에 익숙하다. 북한의 남침을 도와준 나라, 공산주의 종주국, 냉전으로 인해 일명 ‘적성국가’로 분류되어 입국이 불가했던 나라다. “니 아들 ‘빨갱이’되는 거 아니고?”마을 어르신들에게, 그리고 당시에 군생활 하던 한참 선배들에게 농담 반 진담반으로 들었던 말이다.

1990년 러시아와 외교관계 수립 후, 구소련이 붕괴된 지 30년도 넘게 지났지만 한국전쟁을 직접 겪었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에 게 러시아는 아직도 ‘소련’이고 공산주의 국가, ‘빨갱이’의 나라다.

하지만, 2023년이 된 시점에서 러시아는 최소한 생소한 나라는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현대·기아 자동차, 팔도 도시락, 오리온 제과 등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 에너지 개발 협력 등 이익을 상당히 공유할 수 있는 나라다. 정치적으로도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주변국으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다. 문화적으로는 어떤가? 우리의 K ? POP, K - BEAUTY, 러시아 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학과가 생겨나는 등 우리나라 언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우리 국민 인식 속에서도 막연한 나라의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과 냉전이 초래했던 러시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해소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군사 분야에서는 어떤가? 우리는 러시아 군과 군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직도 ‘소련’, ‘빨갱이’, ‘공산주의’, ‘부도난 나라’의 배고픈 군대로 인식하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혹은, 서방의 관점과 평가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안보 관련, 군사 분야에서 러시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국가다.

 

첫째로, 주변국 중 하나다. 유사시 직·간접적으로 한반도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나라다. 구한말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통일 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군사 강국이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잘 알아야 한다. 활용하든지 경계하든지 모르면 대책이 없다. 우리 군은 미군의 편제와 편성을 모방하였다. 그래서 미군의 조직체계와 전술을 거의 답습하여 가져왔다. 한·미상호방호조약을 맺은 동맹으로서 연례 연합훈련을 하기에 타 국가 군대와 비교할 때 상호 이해의 정도가 높다.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을 보더라도 러시아보다 더 다양한 연구와 소개가 이뤄져 왔다. 하지만,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m는 아직 그 기반이 넓고 깊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군사 및 안보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둘째로, 군사과학기술과 전술 분야에서 미군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냉전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주요 무기체계로 보면 미국을 제외하고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핵무기, 정밀유도무기, 극초음속미사일 등 전쟁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략무기는 미군조차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실제로 90년대 불곰사업으로 도입된 T - 80 전차와 헬기, 대공 로켓 등은 우리 무기체계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방산 분야에서 협력과 군사과학기술 교류에 비교적 우호적인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셋째로, 북한군과 그들의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키(key)’를 쥐고 있는 나라다. 아직도 북한군 전술과 무기체계는 ‘소련’산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열심히 북한군 전술을 연구한다. 그 출처는 탈북 군관 진술, 국외에서 수집한 북한군 교범 등이 대부분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관점(전술)으로 북한군 전술을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러시아 제병협동군사대학에서 수학하던 시절, 모든 강의에서 북한군 전술이 바로 여기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여전히 북한은 러시아 무기체계를 쓰고 있다. 성능을 개량하더라도 무기체계를 활용하는 개념과 방법(전술)은 일맥상통하기 마련이다.

 

다년간 러시아 현지 생활과 러시아 민간 및 군사대학에서 유학하면서 군인의 관점으로 러시아라는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현장에서 느낀 점은 아직 러시아인들은 미군과 동맹인 우리나라 군인에 대해 경계하고 있음을 느꼈다. 진심으로 다가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제한된 여건에서도 ‘용러(用露)’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공개된 자료를 수집하여 읽고 연구하였다.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러시아군 고위급 간부가 방한하면 안내와 통역, 회의 준비도 맡았다. 러시아에서 5년간 유학과 출장, 군사외교 현장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이 책에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가장 듣기 지루해하는 말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한두 번 정도 들으면 그러려니 하지만 군을 필한 남자치고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축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군을 필한 한국 남자들이 근무한 부대가 다르고 주특기가 다르다 보니 그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군 복무시절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공유하면서 친밀한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경험의 공유를 통해 동질 의식을 갖게 되며 서로를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특히 군 복무와 군대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나라에서는 군에 대한 이해와 기본 지식이 그 나라와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 틀이 될 수 있다. 비단 남자들의 경험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그런 나라이다.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을 조국전쟁, 독소전쟁(2차 세계대전)은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 특히 대조국 전쟁에서는 2천 4백만 명이 넘은 러시아인들의 희생으로 조국을 지켰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매년 5월 9일 승전 기념일에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한다. 시내곳곳, 거리와 지하철역 명칭 등에서도 군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군과 군대 문화의 이해는 러시아 전체 문화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폭넓은 연구가 요구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지인들로부터 러시아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세계에서 군사력이 두 번째로 강한 나라가 맞나요?”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나요?”군인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로 물어본다.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뉴스를 보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군인이라면 군사적 관점으로 러시아에 대해서 한두 마디 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군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좀 더 실상을 알고 싶은 사람, 기업가, 외교관련 업무 종사자, 국제 정치 연구자 및 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대답을 이 책에 써 보았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글의 내용을 맛으로 평가해 보았다. 1장 ‘전쟁과 러시아’ 2장 ‘러시아 군인’은 ‘순한 맛’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3장 ‘지금 러시아 군은...’은 ‘조금 매운 맛’이다.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읽으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3년, 제병협동대학교에서 2년간 교육을 받으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러시아군을 통해 러시아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다. 대중 매체에 공개된 내용도 일부 활용하였지만, 직접 생활(러시아 민간, 군 교육기관)하면서 보고 들은(러시아군 교관과 동료로부터) 내용을 진솔하게 담고자 하였다. 국가가 준 소중한 교육의 기회를 통해 군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 시기에 러시아와 러시아군을 이해한다는 이 책의 집필 의도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 결코, 그들의 행위를 옳다고 주장하거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전쟁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국이기에 그리고 통일로 가는 여정에 있어, 또 그 이후에 반드시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되

어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취할 것은 취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전쟁은 언젠가는 끝난다.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정상화, 전후 재건 사업, 에너지 분야 협력, 외교관계 재설정 등 또 다른 위기와 기회가 온다. 그래서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바로 지금, 러시아를 제대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러시아 군과 문화 전반을 이해하여 독자들의 삶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